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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4 01:07 투자관련 자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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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C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의 글입니다. 최근 주가 급등의 원인인 유동성 장세가 역사적으로 볼 때 어떻게 끝나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경기가 뒷받침되지 않는 유동성 장세에서 갑작스런 주가하락은 그 폭이 큰 만큼 조심하라는 이야기네요. 지금이 유동성 장세의 초입인지 아니면 끝자락에 온 것인지 한번쯤 판단을 해 볼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시장 심리가 강해 조정이나 하락에 대한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을 정도다. 주가 상승의 원동력은 유동성이다. 따라서 시장을 파악하기 위해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유동성 장세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유동성 장세의 네 가지 특징


1985년 이후 유동성장세는 네 번 있었다. ‘99년의 경우 시장 성격은 유동성 장세에 부합하나 주가 움직임이 차이가 있어 명확히 규정짓기 어렵지만 돈의 힘이 작용한 것 만은 분명하다. 규모가 작고 기간이 짧았던 경우까지 따지면 대상이 훨씬 많지만 대규모 유동성 장세는 평균 5년에 한번에 그칠 정도로 흔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대규모 유동성 장세는 네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 장기 상승 트렌드의 마지막 국면에 주로 나타난다.
둘째, 유동성 장세가 시작되면 주가는 짧은 시간에 강하게 상승한다.
셋째, 유동성 장세가 시작되기 전에 3분기~1년에 걸친 조정 기간이 있다.
넷째, 유동성 장세가 끝난 이후 주가는 빠르게 유동성 장세가 시작되기 이전 수준으로 떨어진다.
 
① 1989년 유동성 장세


첫 번째 유동성장세는 1988년 10월에 시작되어 ‘89년 4월까지 계속됐다. 주가는 670P선에서 1,000P까지 49% 상승했다. 유동성 장세가 시작되기 전에 주가는 150P에서 670P까지 2년 반에 걸쳐 상승했다. 
유동성 장세의 시작은 금융 및 금리 자유화를 위한 정책 시행이었다. 정부가 80년대부터 시중은행 민영화와 외국인 합작 시중은행 설립을 허용해 부분적으로 금융 자율화를 추진한데 이어 금리 자유화도 ‘88년 12월부터 본격 추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상승이 시작됐다. 금리 자유화를 위한 선행 조치로 유동성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주가가 상승했지만 경제 펀드멘털은 이미 기울고 있었는데 선행지수가 ‘88년 2월에 정점을 형성했다. 유동성 장세가 시작되기 전인 ‘88년초~10월까지 주식시장은 경기 둔화를 반영해 10개월 가까이 600P대를 벗어나지 못했었다. 
‘89년 4월 유동성 장세가 끝났다.
특별한 요인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주가가 과다하게 올라 경제 펀드멘털과 괴리가 생긴것이 하락 요인이었다. 당시 경제는 모든 부분에서 약화된 반면, 주가가 올라 고주가 부담을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다.
주가는 유동성 장세가 끝난 후에도 1년여에 걸쳐 830~1,000P 사이를 유지했다. 장기 상승에 따른 기대가 계속된데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하락을 방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국면이 지난 후 90년초부터 주가가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해 ‘92년에 450P까지 떨어졌다.

 


 

② 1994년 유동성 장세


두번째 유동성 장세는 ‘94년 9월에 시작되어 10월말에 마무리됐다. 유동성이 유입되는 동안 주가가 940P대에서 1,150P대까지 22% 상승했다. 유동성 장세 시작 전에는 주가가 460P에서 배 이상 올랐었다.
‘94년 유동성 장세의 힘은 1년전 금융실명제를 시행하면서 공급됐던 돈이었다. 여기에 대외적으로 반도체 경기가 호황을 거듭하고 중국 특수가 겹친 것도 원인이었다.
유동성 장세는 정책이 변경되면서 마무리됐다. ‘94년 10월에 한국통신 주식중 일부를 일반에 공개 매각했는데 당시 입찰 보증금으로 4조원의 자금이 몰렸다. 많은 유동성을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정부가 자금 회수에 나섰고 주가가 떨어졌다. 주가가 많이 오른 점도 부담이었다. ‘93년에 시작된 업종 대표주의 상승은 1년 사이에 SK텔레콤 6배, 삼성전자 5배, POSCO 4배나 가격이 오를 정도로 빠르게 진행됐었다.
유동성장세가 끝난 후 주가는 빠르게 유동성 장세가 시작됐던 시작점으로 돌아온 후 1년반 가까이 횡보했다.

 

 

③ 1999년과 2007년의 유동성 장세


세번째는 ‘99년이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98년 중반부터 대규모 자금을 풀었고, 금리가 사상 처음으로 한자리수로 떨어졌다. ‘98년 말부터 경기가 안정을 찾으면서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들어와 유동성 장세가 시작됐다. 당시 주가 움직임에는 유동성 장세 직전 사전 조정 같은 형태가 없었는데 주가 상승이 워낙 빠르게 이루어져 이 과정이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이 2007년이다.
주가는 1,400P에서 시작해 2,000P까지 40% 가까이 상승했으며 상승 기간은 5개월이었다.유동성 장세가 시작되기 전 주가는 520P에서 세 배 가까이 올랐고 바로 직전인 2006년에는 1년 가까운 휴식 기간을 갖는 등 전형적인 형태로 진행됐다.  상승 동력은 국외에서는 차입 수요에 의한 자금, 국내에서는 투신사 펀드 유입 자금이었다. 유동성 장세가 끝난 후 주가는 1차 1,500P까지 하락했다가 미국 금융 위기와 함께 크게 떨어졌다.

 


 

지금이 유동성 장세라면 주가가 추가 상승해 사상 최고치를 어렵지 않게 갱신할 것이다. 과거 대규모 유동성 장세가 시작되면 30% 가까이 주가가 상승했던 예나 최근 유동성이 전세계적으로 전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 임을 감안하면 이보다 더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주가가 최고치를 갱신한 후 유동성 장세가 마무리되면 주가는 빠르게 하락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주가 조정이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느냐는 주가와 경제 펀드멘털의 괴리에 따라 달라진다. 경기 둔화 와중에 주가가 계속 오르고, 유동성 장세가 끝나는 시점까지 경기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주가 하락은 의외로 빨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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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zeon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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